세잔은 후기 인상파 화가로 대가들의 그림을 보며 영원불변하는 그 무언가를 추구했다고 한다. 인상파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태를 사물의 본질이라 생각하고 그 모습을 그렸지만, 세잔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변화하지 않는 형태의 본질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정물대 위의 사과를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고 한다.
서점에 가판대의 여러 자기계발서는 ‘본질을 알아라. 본질을 놓치지 말아라.’라고 수없이 말한다. 도대체 본질이란 무엇일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사전적 정의로는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이라고 나와 있다. 위 문단의 이야기와 함께 정리해보자면 ‘변하지 않는 그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 같은 일반인이 본질 자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고 탐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서양 철학의 핵심적 질문임을 알았을 때 내 머리는 이미 아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질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고 탐구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
책 ‘보통의 존재’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다. ‘본질을 아는 것보다, 본질을 알기 위해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이 바로 그 대상에 대한 존중이라고.’ 이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다. 하나의 대상을 존중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 자신을 대입해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만 해도 가족, 회사, 모임에서의 여러 상황에 따라 그 역할과 책임이 변할 수는 있지만, 내부의 나 자신으로서의 가치관, 성향, 생각, 목표들이 있고, 이것들을 존중해주는 것이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빈 껍데기 같은 존재이다. 계속 우리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 그 속이 점점 채워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한다는 과정조차 우리 인간의 본질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빈속을 채워가며 성장한다. 우리 자신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