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하나, 나의 삶을 지킬 것이다.
나는 회복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것은 부모님이다. 다른 사람들은 따뜻한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나는 아니었다.
부모님은 생일을 명목으로 비싼 선물을 요구하고, 나는 선물로 인해 월급을 털어 사드리곤 했다. 이 상황은 첫 취업하고 난 상황이다. 그 후에 부모님과 적대적으로 지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부모님은 말로서, 폭력으로서 가스라이팅을 했다.
아버지는 밖에서 받은 화를 나에게 쏟은 적이 있었고, 어머니는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도, 그들에게 밉상이었다.
20년 동안 나는 견뎌왔다. 힘들면 울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하고 나를 다독였다.
내 삶의 이탈은 회사 퇴사 였다. 남들처럼 회사 다니며 정해진 길로 살거라 생각했던 부모님의 생각을 무너뜨렸다. 아버지는 회사를 알아보지 않고 나왔다고 뭐라했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스타트업에 들어가서도 나를 괴롭혔다. 초창기 회사라 급여도 많이 못받자, 어머니는 나 몰래 사장님을 만났다. 어머니늠 딸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했다. 다행히 사장님은 나에게 뭐라하지 않았고, “ 부모님이 극성이네요”! 라고 했다.
나의 어머니는 교사였고, 아버지는 사업가였다. 그 분들은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안정된 회사에 다니며 월급 따박따박 받는 삶이 좋다고 생각했다. 일이 적성에 맞는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 알고 싶어서 윈도우 프로그램 개발, 리눅스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하게 해보았다.
개발 실력은 좋지 못했지만, 자유로운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부모님을 잘못만난 것은 나의 운명이라 생각했다.
이제 나이 30대가 되니, 잔소리가 심해졌다.
어머니는 친구분들 자녀들의 결혼식을 갔다오면.
나에게 “넌 왜 결혼도 못하고 있냐.” 식으로 말했다.
작년에 나는 실업상태로 지냈고 혼자 개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 기대지 못한 상황이었다.
근근히 아르바이트도 하였고, 스터디까페가 나의 아지트 였다. 4개월 백수생활 중에 아버지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개발팀 자리를 알아 보셨다.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그 M회사는 나의 실력에 미심쩍은 질문을 했다. 개발팀 팀장은 이렇게 물었다. “자체 서비스 개발에 참여 하셨는데 외주개발을 하실 수 있으세요.?” 난 여기가 외주업체 인줄 몰랐다. 앱을 웹앱으로 만들어서 한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답변을 엉성하게 했다.
면접에 떨어지길 바랬다. 웹을 잘 아는 것을 원하는 곳에서 일하기 싫었다. 면접을 보고 난 뒤, 그 회사는 나를 예의없는 답변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피드백을 받은 아버지는 나에게 분수도 모르고
행동을 했다며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