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But I'd like to put the next 15 minutes or so into perspective for you and I'm going to need your help for that.
이른 아침인 것 알지만 여러분들은 (박수를 치며) 이 템포로 박수를 쳐주셨으면 합니다. 좋군요. 예상한 것보다 빨리 리듬을 찾으셨어요. 우리가 박수를 한번씩 칠 때마다 이 세상 누구가는 교통사로로 부상을 당했습니다. 1분당 96번의 사고가 일어났다는 거죠. 세계적으로 해마다 120만명의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매년 거의 35000명에 다르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자동차 사고에 의해 목숨을 잃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 매달 9.11 테러와 같은 죽음이 지난 60년동안 반복되어온 것과 같습니다. 저만 이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이 테러에는 전쟁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꽤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왜 우리가 이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찾아보기로 했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고 다르게 생각힉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말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거리(Streets)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거리란 무엇일까요? 7000년 전 거리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거리라는 것은 singular definition이 있었습니다. 거리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이동하는 장소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모이고 이웃과 이야기하고 사람을 사귀는 장소였습니다. 거리는 집이나 거실의 연장선이었고, 공적인 장소였습니다. (public domain) 그러면서 아마 호모사피엔스 역사에 가장 민주적인 장소 (democratic spaces) 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거리가 자동차만을 위한 exculsive domain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 (현재는 이 강의 내용을 고대로 정리하고 있는데, 여기에 사실 사람들이 알고싶어하는 것은 내 의견 아닐까? '그래서 뭐? 네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뭔데?')
저는 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한 두가지 이유가 두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이유로는 1800년대 후반 ~ 1900년대 초반에 있었던 급격한 도시화 시대에 엔지니어들은 그 시대의 영웅이었습니다. 도시에서 발생되는 급격하고 다양한 문제를 잘 해결했습니다. 거러나 자동차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희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구도 교통 안전 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없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이 과정에서 큰 기회/사업성을 본 자동차 산업계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거리는 공공 시설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수로, 전기, 하수 등과 같이 수학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로는 자동차 업계가 가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팔아야 할 물건(자동차)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을 싫어했습니다. Anti-Automobile Age였던 거죠. 자동차와 Motorists들은 경멸당했습니다. 그러자 자동차 업계는 마케팅이나 조롱과 같은 방식들을 이용하며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습니다. 그들은 거리를 가로지르는 행위인 jaywalking (무단횡단)을 제지하는 캠페인 등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 slang에서 jay라는 단어는 시골사람을 경멸적으로 뜻하는, 멋지고 커다란 도시의 방식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길 가운데를 건너려고 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7000년이나 된 우리의 습관인데 말이죠. 보이스카우트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그러한 행위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old-fashioned, 변혁의 기로에 서있는 사람이라고 놀림받았습니다. 이는 무척이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말합니다. 도시의 사람들은 구식여겨지기 싫어하고 놀림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 결과 보행자들은 횡단보도를 이용하기 위해 길 모퉁이에 모여지고 아이들은 놀이터라고 하는 새롭게 발명된 공간으로 옮겨졌습니다. 마침내 거리는 그러한 거슬리는 방해물들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마 도시의 역사에 관해서 가장 커다란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죠. 100년동안의 교통공학의 끝에 와있습니다. 뭐 보여질만한 성과가 있나요?
교통 흐름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방법이나 정체를 완화할 방법, 사람들을 보호할 방법은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거리는 마치 모래를 가르는 화난 강들처럼 우리의 도시를 분할합니다. 교통 안전 문제가 있지요, 오염과 사회적 exculsion 문제도 있습니다.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상하고, 때론 더는 시대에 맞지 않느 수학적 모델과 공식, cost-benefit analysis, impact assessments에 조종당한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코펜하겐이나 취리히 같은 아름다운 도시들도 말이죠. 어떤 때는 우리가 마치 매트릭스의 캐릭터와 같이 느껴집니다. 세계의 여러 도시들은 단순하고 괜찮은 자전거 도로를 설치한다든가, 보행로를 넓힌다던가 동네를 traffic-calm 한다든가, 속도 제한을 낮춘다던가 그런 일 하나 못합니다. 엔지니어링 부서의 수학적 공식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죠. 그 문턱에서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들이 버려집니다.
이 매트릭스 세상을 나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도시화는 그 어느때보다 오름세에 있고, 우리는 새로운 해결책들이 어서 필요합니다. 거리와 같은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엔지니어링 해야 할까요? 도시를 만드는 것은 사람입니다. 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그들의 행위, 패턴, 움직임, 욕구, 필요 등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해보면 it worked for 7000년동안. 저는 그게 다시 잘 작동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모두 share 하는 기본적인 사람 관찰입니다. 인류학, 사회학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하지만 핵심은 관찰이라고 하는 다른 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연구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행위입니다. 1958년에 프랑스의 철학자인 Gaston Bachelard는 "desire line"이라는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Desire line은 도시 계획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여기 코펜하겐의 예시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자전거 도로의 한 코너입니다. 코펜하겐 시는 수천명의 자전거 이용자들이 parallel street로 가기 위해 보행로를 가로질러가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에게 하루종일 딱지를 부과하는 것 대신에 이 행위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관찰을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기 위해 임시적으로 자전거도로가 놓여졌고, 마침내 영구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잠재적인 desire lines가 respected 되었습니다.
이건 캐나다의 할리팩스에 있는 호텔방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초록색 선은 기존 보행로입니다. 일요일에 개를 산책시킨다든가, 러닝을 하러 간다든가, 19세기의 산책에는 딱이죠. 하지만 빨간색 선은 사람들이 아침 러시아워에 주거구역에서 시내로 실제로 어떻게 걷거나 자전거를 탔는지 보여줍니다. 눈 사이로 desire line을 만들면서 말이죠. modern city는 이를 관찰하고 이에 따라 새롭게 디자인할 것입니다.
desire lines는 정말 멋집니다. 제 회사에서는 desire lines를 정말 좋아합니다. 4월의 어느 날 코펜하겐의 한 교차로를 12시간동안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통행한 16558명의 자전거 이용자들의 desire lines를 기록했습니다. 코펜하겐에서 그렇게 바쁜 교차로도 아닙니다 하하. 정말 멋진 활동이었습니다. 인류학자도 함께 작업했죠. 새롭고 혁신적인 해결착을 찾고 공부하는데에 있어 12시간동안의 강렬한 사람 관찰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은 없을 것입니다.
세계 여러 도시들의 자전거 인프라와 자전거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계획가들이나 공학자들이 자전거를 타려는 시도조차 안 했는지, 보행자로써 어떠한 고려조차 안 했는지에 대해 저는 계속해서 놀라고, 당혹스럽고, 답답합니다. 사무실 작업과 , 컴퓨터 모델, 지도만 다룹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들의 도시를 modernize 하기 위해 필요한 두번째에 대해 말합니다.
디자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디자인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디자인과 관련된 선택을 합니다. 어디에서 왔든지에 상관 없이 우리의 DNA에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디자이너는 엔지니어와 다르게 생각하고 일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상품의 실제 사용자에 대해 생각합니다. 디자인 과정의 끝에 가 있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기능성, 이용성, 사용자 친화성을 고려하고, physio, socio, pshyco, ideal pleasure과 같은 네가지 종류의 쾌락 같은 걸 생각합니다. 자전거나 보행자를 위한 도시나 정말로 살기 좋은 도시를 계획하는 것은 시장에 나와있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 같아야 합니다. 칫솔, 토스터, 스마트폰, 의자와 같은 거 말입니다. 오늘 여기 여러분들은 들어왔을 때 자리를 곧바로 찾았고 앉았습니다. 의자에 대해서 생각을 하거나 디자이너의 의도를 해석하거나,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와중에 이게 없어질 건지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쉽고 직관적입니다. 사람을 위한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도 그래야 합니다.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길을 걷는 게 그만큼 쉽고 직관적이면 어떨까 상상해보세요. 정말 좋겠죠, 그리고 가능합니다. 올바르게 적용한다면 디자인은 정말 강력하고 아름다운 도구입니다. 다른 중요한 것들을 잊게 함으로써 매혹적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 오신 80%의 분들은 우리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이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디자인에 매혹당해 그걸 사려고 했을 겁니다. 잘 디자인된 자전거 인프라는 사람들이 그걸 이용하도록 유혹할 겁니다. 도시에서 A에서 B로 이동하기 위한 방식으로 자전거를 가장 빠르게 만든다면 세계의 어느 도시이든, 언덕이 얼마나 있든, 얼마나 덥거나 춥든, 시민 이용자들은 좋은 디자인과 편리성, 안전성에 유혹당해 자전거를 탈 것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사람들의 행위 방식 또한 바꿀 수 있습니다. 세계 어딜 가든지 똑같은 얘기를 듣습니다. "저 멍청한 자전거탄 사람, 법도 어기면서 빨간불에도 가고, 보행로에서도 타고." 거기에 할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자전거 이용자들은 충분한 자전거 인프라가 없습니다. 아예 없을지도 모릅니다. 전혀 다른 교통수단인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교통 체계와 법규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코펜하겐의 아침 러시아워 때에는 몇십만명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일에 갑니다. 다르죠. 매 신호등마다 커다란 자전거 이용객들이 이상한 일을 합니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확인합니다. 그들은 잘 디자인된 자전거 인프라를 이용하기 때문에 법을 어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법을 어기고싶지 않아합니다. 도시 환경에서 무법자가 되고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어하고, A에서 B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어합니다. 미래의 좋은 도시들은 사람 관찰과 디자인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각 분야에서 이끄는 사람들의 생각과 관찰을 잘 경청해야합니다. 루루 소피아와 같은 사람말이죠.
루루는 5살입니다. 그리고 저는 루루의 도시 관찰을 일년 반째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 딸입니다. 루루가 3살 반이던 일년 반쯤 전에 시작했죠. 늘 그렇듯 카고바이크를 타고 코펜하겐의 철물점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빨간불에 멈추고 루루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갑자기 "아빠! 저것봐바. 오토바이에 두명이 타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3살 반밖에 안 되었을 때죠. 그 concept은 그 어린아이 머리에 한번도 occurred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 그렇구나! 멋지네. 친구일 수도 있고. 같이 오토바이 타면서 이야기할 수 있고 좋은가보다. 너랑 나도 자전거에 두명이 타 있는 거잖아, 친구고, 이야기하고." 루루는 놀라워했습니다. 길을 이어갔고, 또 다른 빨간불에 멈춰섰습니다. 돌이켜보니 루루는 이 urban theater에서 열정적으로 두명의 사람이 어떠어떠한 것을 하는지 예시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이 조금은 짜증난 말투로 "아빠. 자동차들은 바보같아."라고 말해 저는 "어 그러니. 근데 왜? 왜 자동차들은 바보같애?" 물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없잖아"라고 말하더군요. 3살 반짜리 애가 자동차 사회에서의 social exclusion을 정확하게 짚더군요. 자동차의 익명성 말입니다. 정말 멋지고 순수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일년에 자동차에서 한 다섯시간정도를 보내는데, 굉장히 pure한 observation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