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눈앞이 침침해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눈앞에 무엇이 서린 듯하더니, 올해 들어 더 심해진 듯하다. 어의는 내게 충분히 쉬면 좋아질 것이라 한다. 쉰다고 좋아질 병이면 세상 아픈 백성 모두 쉬게 해주고 싶다.
오늘도 밤이 늦어 침소에 이르렀다. 늦은 시간까지 대신들과 국사를 논하고 그들의 앓는 소리, 싫다는 소리, 안 된다는 소리를 들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이럴 때면 나라는 존재가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죽는소리를 들어주는 대나무 숲이 된 듯하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나는 군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며, 그들도 신으로서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하는 것임을 알기에 함께 못 할 짓을 하고 있다.
자리에 앉아 어제 써 두었던 언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뒤적인다.
“하늘은 까마득히 먼 곳이니 하나의 점으로 ‘ㆍ’, 땅은 넓게 평평하니 널찍하고 긴 ‘ㅡ’로, 그리고 사람은 그 가운데 서있으니 ‘ㅣ’로.....”
어미가 되는 소리는 이렇게 만들어 두었는데. 더 이상 생각이 미치질 않는다. 여기서 더 무엇을 할 것인가?
답답하다. 바람도 쐴 겸 집현전으로 향한다. 상선은 밤바람이 몸에 좋지 않다며 말린다. 하지만 내 고집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도 상선이다. 두어 번 말리고 조용히 뒤를 따른다. 앞서가는 내관들에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일렀다. 홀로 바람 쐬는데 다른 이를 깨워서 무엇할 것인가.
바람이 분다.
“바람” 입으로 뱉어내 본다. 다시 한번 “바람”, “상선 ‘바람’ 해보시게”, 상선이 ‘바람’이라고 말한다. 아 조용히 말씀하시게나 상선…. 입 모양이 둥글게 열렸다 닫힌다. 바람……. 둥근 입 모양….
“상선, ‘바람’ 기억해두게나”.
집현전 앞이다. 역시나 불이 꺼지지 않았구나. 문을 열기 전 혼자 생각해본다. ‘이자들은 진실로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공부하고, 누구를 위한 공부하는 것일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정인지 이친구, 또 여기서 잠들었군
“이보게 대제학, 퇴청하고 본가에서 주무시게나…….”
곤히 잠들어서 들리지 아니하는 듯 하다. 소리쳐 불러본다.
“대감님! 기침하셨습니까요!”
화들짝 놀라며 좌우를 살피는 꼴이 퍽이나 우습다. 상선과 나인들도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문다. 정인지…. 내게 몇 안 되는 친구 같은 신하 중 한 명이다. 그 정인지가 지금 버얼건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 정도만 하시고 쉬시게나” 그도 눈으로 대답한다. ‘전하도 이 시간에 여기에 오시면서 제게는 어찌 쉬라 하시는지요?’라 응한다. 그래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하는 것이리라. 내게는 언문과 같은 것이 저들에게도 있으리라.
“이보게 상선, 뒤를 물리고 주안상 하나 들이게”, 역시나 상선은 건강을 이유로 만류하지만 결국 주안상을 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