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땡볕 한가운데를 걸어간다. 걸어도 걸어도 그 뜨거운 공간 한가운데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만능 가방 백팩을 포기하지 못하는 내게(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못한다.) 여름은 지옥이다. 찌는 더위에 등 위로 땀이 줄줄 미끄러져 내려가고, 옷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그 존재를 드러낸다.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증거, 고통의 산물, 찌꺼기, 노폐물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항상 이너웨어를 받쳐입는다.
여름에도 난 반팔 옷보다 긴소매 옷를 선호한다. 내 피부는 워낙 민감하여 땡볕에 잠시 걷다 오기라도 하면 머지않아(늦어도 다음 날이 되면) 벌겋게 올라와 간지러움이 날 괴롭힌다. 긴팔로 내 피부를 방어하려고 하지만, 가릴 수 없어 드러난 내 손등은 여름이면 간지럽지 않은 날이 없다. 최대한 땡볕으로부터 날 방어하려 해보지만, 더위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긴팔을 포기하고 내 팔을 결국 내어준다. 간지러움의 고통 대신 더위의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 고통받지 않고는 이 여름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몸에 열이 많고 땀이 많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신체적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로는, 여름은 너무 많이 드러내는 계절이다. 감출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어쩌면 내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뜨겁게 불타오르는 활동적인 계절이다. 모든 것이 활력을 가지고 표면 위로 꿈틀대어 활개 친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활동적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있다 주변의 파동에 얼떨결에 모습을 드러낸 드러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 애를 쓰는 계절이기도 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외력으로 인해 드러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름을 너무 잠잠히 있던 순진한 것들을 집어 끌어내려는 악당 같은 모습으로 표현한 것 같다. 여름이어서 좋은 점도 많다. 생명은 초록빛으로 활력을 갖게 되고, 덩달아 우리들도 활동적으로 되어 새로운 모험, 도전을 향해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햇빛을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져 유난히 밝은 느낌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위에서 언급한 여름의 이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게 내가 여름 하면 바로 떠오르는 느낌이기 때문에. 여름이 그저 싫다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힘든 시기를 보내기에 이 계절에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땡볕 아래 극한의 더위 속에 허덕이다가 시원한 에어컨 앞 바람을 맞으며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aside> 💌 23번 째 뉴스레터 글감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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