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최근 굉장히 화가나는 일이 있었다. 나는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는 편이지 사과를 받거나 혹은 누군가로 강하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나를 동일인물이 몇 회에 걸쳐 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굉장히 화가 났다는 말을 직접 표현하게 만드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미스커뮤니케이션. 본인에게 나름 심각한 이야기, 어쩌면 담론적인 해석도 충분히 가능한 내용. 그리고 이에 대해 ~할껄! 이라는 말에 지금도 늦지않았다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욕설. 그것도 내가 운영중인 모임 단톡방 내에서의.

가끔 농담처럼 오간적은 있긴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완전히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했고, 개인톡으로 항의하자 뒤늦게 다른 방인줄 알았다는 사과를 다른사람들에게 한 뒤에야 그 미안함은 내게 차례가 돌아왔다.

설명할 기력이 없지만 내 말대로 안된다는 비슷한 내용과 공적인 자리에서 욕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 마지못함이 나는 너무나 화가 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분노는 마주한 상황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태도.

약 일년간 그 상대가 나, 혹은 다른 것들에게 보여온 태도는 설명되지 않은 맥락과 생각, 감정을 쉽게 가늠할 수 있게 해줬다. 도덕적 우월감, 한심함, 너도 똑같구나, 무지한 너에게 내 시간을 써가며 커뮤니케이션을 할 생각이 없으니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본인이 아무렇게나 내보이는 그런 감정의 배설이 내가 몇번이나 참아넘겨준 배려 덕분에 발생할 수 있었다는 걸 전혀 모르는 그 뻔뻔스러움과 오만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비아냥과 욕설을 섞어가며 '한 방 먹여주는' 대신, 네가 설명하지 않은 맥락을 이미 알고있고, 입장을 유추할 수 있는 말 한마디만 있었더라도 절대 그런식으로 받아넘기지 않았을 것이며, 나는 굉장히 화가 났으니 같은 일이 또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다.

내 태도는 내가 결정하며, 내가 쌓아온 삶의 방식을 타인의 방해로 무너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물론 그러면서도 화를 한참은 억눌러야했고, 참음에 대한 억울함은 꽤나 컸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있었다. 이것이 옳다는 걸.

이미 나는 꽤 긴 시간 전부터 차곡차곡 상대방이 선을 넘는 순간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걸 행하던 당사자는 별 생각도 없었겠지만, 공격에 사용할 수 있는 자원과 에너지는 내가 훨씬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걸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결정권은 온전히 내게 있으며, 사용하겠다고 결정한 순간 상대방은 무방비하게 나의 비난과 공격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 순간 부터 과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어디까지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기분과 태도가 함께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 등골이 오싹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세상 많은것들이 흑백 대신 흰색에 가까운 검정, 혹은 검정에 가까운 흰색 따위의 모호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