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스스로가 오만하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느낄 때가 있었다. 작은 회사에서 또래 동료들과 주로 함께 일하다 보면, 비교적 쉽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나 직장 생활을 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 같은 경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또래 동료들보단 많았다.

직장 생활 1~2년이 지나고, 주위에 '센스 좀 있다' 소리 듣는 동료 한두 명만 모여도 쉽게 일 못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가 나온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센스가 부족하거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문서작성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책임감이 없는 경우 등이다.

2~3년이 지나면 상사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실제로 가끔, 아주 가끔 경력을 어디서 어떻게 쌓았는지 모르겠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게는 경력은 경력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때 선배들이 상사를 욕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10년도 더 된 것 같은 보고서 양식을 그대로 쓴다고, 보고서를 꼼꼼히 정리하지 않는다고, 지금 우리가 쓰는 업무 툴을 잘 못쓴다고 '일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곤 했었다. 그냥 그때는 별 비판 없이 나의 상사가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했고, 나의 상사가 유능한 사람이 아닐 거라고 단정 지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존경은 강요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이라 했던가, 직급을 달면 그 직급을 달게 된 이유가 있다. 오랜 경험에 의한 인사이트가, 시각이, 노하우가 우리랑 다른 것이다. 관리자 직급을 달게 되면 실무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때로는 자신이 실무자일 때와 다른 업무를 하는 팀을 관리하게 될 때도 있다. 보고서는 양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것이며, 이제 그들은 보고서 양식 없이 한두 마디로 간결하게 요약해서 전달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작은 회사에 있을 때는, 형식과 양식을 중시하던 동료들이 많았다. 자신의 일의 완성도가 높아 보이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보기에 예쁜 문서가 읽기에도 좋다고, 예쁘고 깔끔하게 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지금 회사의 상사분들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핵심이 없을수록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되며, 내용이 꽉 차있다면 형식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용이 얼마나 알찬지 보다 형식이 얼마나 깔끔한지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가 부끄러워졌다.

보고를 위해 업무 시간을 빼앗기고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는 것보다 본질과 핵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던 대표님의 말이 완전하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