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은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노동자, 재야 인사들을 ‘좌경’ 및 ‘용공’으로 매도하며 무차별적인 구속과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당대의 양심수 명단은 수많은 청년과 지식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과 법의 굴레에 얽혀 전국 각지의 교도소로 끌려가야 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픈 기록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어두운 단면은 남영동 대공분실 등으로 대표되는 치안본부의 살인적인 고문 수사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 의장 김근태가 본인이 겪은 ‘열 차례의 고문 폭로’하고,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은 ‘구치소 폭행·가혹행위 고발’를 고발했습니다. 당시 정권의 불법 연행과 인권 유린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정권의 폭압에도 평범한 청년들의 희생과 함께 민주화의 열망은 끝내 꺾이지 않았습니다. 1987년 1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법 연행되어 조사받던 스물두 살의 서울대생 박종철이 참혹한 물고문 끝에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군부독재 정권은 그의 사망 원인을 심장마비로 은폐하려 했으나, 의로운 공직자들과 종교계, 언론인, 시민사회의 끈질긴 폭로로 잔혹한 고문치사의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고문 살인 정권을 타도하려는 범국민적 저항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어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열린 ‘구출 학우 환영 및 6·10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대 총궐기대회’에 참석했던 스물두 살의 이한열이 경찰이 직격으로 발사한 SY44 최루탄에 피격당해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1월에 이어 6월까지 젊은 학생들의 희생은 국민의 분노를 일깨웠습니다. ‘6·10 국민대회’와 ‘6·26 국민평화대행진’을 거치며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과 학생들은 “호헌철폐! 독재타도! 전두환 독재정권 퇴진!”과 “양심수 전원 즉각 석방!”을 외치며 마침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onwgznTYKim4MOnlzBnaQfu77O9BpT5a/view?usp=drive_link
In the 1980s, the military dictatorship led by Chun Doo-hwan carried out indiscriminate arrests and repression, branding students, workers, and opposition figures who demanded democratization as “leftists” and “pro-communists” in order to secure the legitimacy of its power and maintain the regime. The list of prisoners of conscience from that era is a painful record that vividly illustrates exactly which incidents and legal charges led countless young people and intellectuals to be dragged off to prisons across the country. The darkest aspects of this era were the murderous torture and interrogations carried out by the Public Security Headquarters—epitomized by the Namyeong-dong Counter-Communist Bureau—and the brutal suppression of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Kim Geun-tae, the first chairman of the Youth Union for Democratization (Mincheongryeon), exposed the “ten instances of torture” he endured, while the Seoul Labor Movement Union (Seonoryeon) filed a complaint regarding “assaults and cruel treatment in detention centers.” These incidents vividly illustrate the regime’s illegal detentions and human rights abuses at the time. However, despite the regime’s oppression, the people’s desire for democratization—fueled by the sacrifices of ordinary young people—remained unbroken. In January 1987, a tragedy occurred when Park Jong-cheol, a 22-year-old Seoul National University student who had been illegally detained and interrogated at the National Security Bureau’s Namyeong-dong branch, died after being subjected to brutal waterboarding. The military dictatorship attempted to cover up the cause of his death as a heart attack, but the truth—that he had been tortured to death—was revealed through the persistent efforts of righteous public officials, religious leaders, journalists, and civil society. This incident served as the catalyst for nationwide resistance aimed at overthrowing the regime that had committed torture and murder. Then, on June 9, Lee Han-yeol, a 22-year-old student who had attended the “Yonsei University General Rally to Welcome Rescued Students and Depart for the June 10 National Rally” held in front of the university’s main gate, was struck by an SY44 tear gas canister fired directly by police and collapsed. The sacrifices of young students from January through June ignited the public’s outrage. Through the “June 10 National Rally” and the “June 26 National Peace March,” citizens and students who filled the streets chanted, “Abolish the Constitutional Amendment! Overthrow the dictatorship! Step down, Chun Doo-hwan’s dictatorial regime!” and “Immediate release of all prisoners of conscience!” and finally changed the course of history.
https://drive.google.com/file/d/1pxsd5C7ajxua7SuDJYtGCyRckrjbX_pL/view?usp=drive_link
1980年代、全斗煥(チョン・ドゥファン)の軍部独裁政権は、権力の正当性を確保し体制を維持するため、民主化を求める学生、労働者、在野の人々を「左傾」や「親共」として誹謗中傷し、無差別な拘束と弾圧を繰り広げました。当時の良心囚の名簿は、数多くの青年や知識人たちが具体的にどのような事件や法の網に絡め取られ、全国各地の刑務所に連行さ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をありのままに示す、痛ましい記録です。 この時代の最も暗い側面は、南営洞(ナムヨンドン)対共分室などに代表される治安本部の殺人的な拷問捜査と、民主化運動に対する過酷な弾圧でした。民主化運動青年連合(民青連)初代議長のキム・グンテが、自身が経験した「10回にわたる拷問」を暴露し、ソウル労働運動連合(西労連)は「拘置所での暴行・苛酷行為」を告発しました。当時の政権による違法な連行と人権蹂躙の実態を鮮明に示しています。しかし、政権の暴圧にもかかわらず、平凡な若者たちの犠牲とともに、民主化への熱望は最後まで折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1987年1月、治安本部南営洞対共分室に違法に連行され、取り調べを受けていた22歳のソウル大学生パク・ジョンチョルが、凄惨な水拷問の末に死亡するという悲劇が発生しました。軍部独裁政権は彼の死因を心臓発作として隠蔽しようとしましたが、正義感あふれる公務員や宗教界、ジャーナリスト、市民社会による粘り強い暴露により、残虐な拷問致死の真相が明らかになりました。この事件は、拷問殺人政権を打倒しようとする国民全体の抵抗の引き金となりました。 続いて6月9日、延世大学の正門前で開かれた「救出された学友の歓迎および6・10国民大会への出陣に向けた延世大学総決起大会」に参加していた22歳のイ・ハンヨルが、警察が直撃で発射したSY44催涙弾に被弾し、倒れてしまいました。1月に続き6月まで、若い学生たちの犠牲は国民の怒りを呼び覚ましました。「6・10国民大会」と「6・26国民平和大行進」を経て、街を埋め尽くした市民と学生たちは、「護憲撤廃!独裁打倒!全斗煥独裁政権退陣!」や「良心囚全員の即時釈放!」と叫び、ついに歴史の流れを変えました。
https://drive.google.com/file/d/19MrDJApP0xZ10cj4YKoz2GyKkzhrWB5V/view?usp=drive_link
20世纪80年代,全斗焕军政府为了确保权力的正当性并维持体制,将要求民主化的学生、工人和在野人士诬蔑为“左倾”和“亲共”,并肆意实施无差别拘捕和镇压。当时的良心犯名单是一份令人痛心的记录,如实展现了无数青年和知识分子因卷入哪些具体事件、受何种法律桎梏,而被迫被押往全国各地监狱的经历。 这一时代最黑暗的一面,便是以南营洞反共分室等为代表的治安本部实施的残忍酷刑审讯,以及对民主化运动的残酷镇压。民主化运动青年联合会(民青联)首任主席金根泰揭露了自己经历的“十次酷刑”,首尔劳动运动联合会(首劳联)则对“拘留所殴打及虐待行为”进行了控诉。这生动地揭示了当时政权非法拘押和践踏人权的实况。然而,尽管面临政权的暴压,伴随着普通青年的牺牲,民主化的渴望最终并未被扼杀。1987年1月,时年22岁的首尔大学学生朴钟哲被非法带往治安本部南营洞反共分局接受审讯,最终在惨烈的水刑折磨下死亡,这一悲剧由此发生。军政府试图将他的死因掩盖为心脏病发作,但在正义的公职人员、宗教界、新闻界及公民社会的顽强揭露下,残酷酷刑致死的真相最终大白于天下。这一事件成为推翻酷刑杀人政权的全民抵抗的导火索。 随后在6月9日,22岁的李汉烈在延世大学正门前参加“营救同学欢迎会暨6·10国民大会出征延世大学总动员大会”时,被警方直接发射的SY44型催泪弹击中,倒地不起。继1月之后,6月年轻学子的牺牲再次点燃了国民的愤怒。在“6·10国民大会”和“6·26国民和平大游行”的过程中,挤满街头的市民和学生高呼“废除护宪法!打倒独裁!全斗焕独裁政权下台!”以及“立即释放所有良心犯!”,最终扭转了历史的潮流。
https://drive.google.com/file/d/1BHFtf-3GfZfTtAvf9NK4s0T5jRC41aUH/view?usp=drive_link
해설 오디오에 클로바더빙으로 제작한 AI 보이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