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1185.jpg

Frieze에 맞춰 영국에 온 추수(tzusoo)를 거의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마지막으로 본 게 대학교 3~4학년이었으니 꽤 오랜만의 재회였다. 그 사이 그는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오프닝에선 지인인 젊은 작가들이 참여해 스토리에 올렸는데, 개인적 관계가 있느냐는 내 질문에 “없지만 동경해서 갔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조용필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인천국제공항에 작품을 설치하고, 올해는 국립현대미술관(MMCA)×LG OLED의 첫 커미션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그런 행보를 보며 나는 질투와 동경, 응원 같은 감정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그 감정에는 대학 시절의 작은 인연이 있다. 나는 우연히 미대 학생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사실 그 자리는 원래 그의 몫이었다. 그는 판화과 학생회장으로 학과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학교 밖 사회적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성격으로 선망을 받던 사람이었다. 전임 회장은 그를 후임 회장으로 추천하려 했지만, 사소한 규정 때문에 그는 선거 출마하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나에게 출마 제안이 들어왔고, 처음엔 여러 번 거절했지만 결국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다. 그 선택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후 나는 학생운동에 남아 총학생회장까지 맡았으며 졸업 후에도 한동안 사회운동에 전념했다.

반면 추수는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졸업 전시를 마친 뒤 곧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엔 SNS로 몇 번 댓글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였고, 졸업 직후 나는 유학을 1~2년 정도 고민했지만 바쁜 활동 속에서 매번 작심삼일로 끝났다. 시간이 지나고 유명해진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 정도가 그와 나의 작은 인연이다. 그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국제적 미술행사 때문에 영국에 온 그가 먼저 만나자고 했을 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해진 그가 나를 잊지 않았다는 고마움, 낯선 도시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고 싶다는 기대, 그리고 그와의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하고 찌질한 기대 심리까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일정은 영국에서도 꽉 차 있었다. 첫 영국 방문이었던 그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초청 받은 곳에서 공간을 둘러보았고, 그 외의 시간은 빅토리아&앨버트와 테이트 모던의 미술관장들, 서도호·양혜규 같은 한국 작가들과의 만남으로 가득했다. 나는 ‘역시 유명한 사람은 바쁘구나’라는 마음과 함께, 혹시 못 보게 될까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결국 그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 아침에 잠깐 시간을 냈고, 우리는 30분 정도 만날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래 남는 대화였다. 그는 내가 했던 운동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고, 자신이 더 이상 활동을 지속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한 때 내가 후회했던 졸업 이후의 운동가로서의 나의 삶에 대한 존중을 전했다 그리고. 학생운동의 경험이 지금 자신의 작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도 조용히 나누어주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예술가로서의 꿈으로 이어졌다. 내가 “넌 이제 유명한 미술가잖아”라고 너스레를 떨었을 때, 그는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시간이 쌓이면 누구나 그렇게 돼. 나는 그래도 이제 10년은 했으니까 이렇게 된 거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 보인다. 너는 좀 다른 사람 같아. 좋은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좋은 경력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보여”라고 답했다. 그는 다시 “맞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경력이나 전시보다도 어떻게 삶을 예술로 살아낼 수 있는가야”라고 말했다. 외향적인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태그된 스토리를 모두 공유하는 사람이고, 나는 준비되었을 때만 관심받고 싶은 소심한 사람인데도, 그 순간 어떤 공통점을 발견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