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남들만 비추고 있는 걸 보니 정작 네 실체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너는 무엇이었는가 생각해보면 태초에 그러기 위해 태어났구나

유리판에 의존하며 그렇게 석출되어있는 게 기댈 곳 조차 없었다면 검은 찌꺼기로 남아 버려졌겠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면 네게 뭐가 보일까 보는 사람이 없으니 비추는지도 모르겠구나

너를 볼 때마다 내 흰자는 탁해져만 가는데 네게 비친 나는 얼마나 선명한가 또 얼마나 떳떳하며 어디까지 부끄러운가 나조차도 모르니 내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구나

네게 물으면 답해줄까 보니 내 눈은 실재만 인식하고 있더라 부재는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거나

들리는 음악에 맞춰 옅어져가는 향수 냄새에 함께 정신이 흩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