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Dialogue: André Lepecki & He Jin Jang
※ 이 문서는 전체 대화록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대화록 전문은 올해 10월 중으로 전체 공개될 예정입니다.
…
사실 제 작업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Crisis Somatics’예요. 제가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단어인데요. Crisis라는 건 단순히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몸에 남긴 감각과 리듬, 그걸 어떻게 감지하고 버티고 흘려보낼 수 있느냐의 문제거든요. 저는 그런 위기의 흔적을 어떻게 몸으로 다시 만지고, 감응하고, 리허설할 수 있을지 탐구해요.
그래서 올록볼록 감응법이라는 움직임 스코어를 만들었고요. 안쪽의 곡선을 밖으로 비추는 방식으로, 몸 자체를 기억의 지형으로 다루고 있어요. 그 기억은 보통 피부나 겉 근육에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더 깊은 데—예를 들어 장기나 관절 같은 곳에—흡수되듯 스며든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들을 흡수하는 기관으로 이해해요. 폐, 위, 장, 골반 같은 부위가 단순한 생리적 역할을 넘어서 감정과 충격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곳이라는 거죠. 그리고 그 장기들의 곡선, 뼈 사이의 곡률, 관절의 진동 같은 것들이 다 그러한 힘을 흡수하기 위해 올록 볼록한 형태로 생긴 거죠. 이것은 기억의 형태예요.
이건 단지 개인적 감각이 아니라, 사실 동양적 리추얼 안에서도 이미 존재하던 방식이에요. 예를 들면 도가의 내경도(Neijing Tu) 같은 고대 도표를 보면, 몸속 장기나 에너지를 풍경처럼 표현하거든요. 곡선으로, 흐름으로, 마치 내부 감각을 시각화한 것처럼요. 또 한국 무속에서도 무당의 몸이 사회적 상처나 사라진 존재들을 감응하고 불러내는 매개체로 작동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제 작업은 유령적 해부학, 보이지 않지만 남아있는 감각과 연결된 해부학을 다룬다고 생각해요. 어떤 장기나 구조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감정과 사회적 기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요. 결국 퍼포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몸을 열어두고, 거기에 다른 감정이 ‘기대고’ 스며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한 명의 퍼포머가 그 모든 ‘흔적(충격과 그것의 회복)’을 몸 안팎으로 진동시키는 데 집중했어요. 마이크의 흔들림도, 관절의 곡률도, 모두 이 사회적 감응의 일부고요. 저는 이걸 통해 우리가 함께 위기를 리허설할 수 있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공간을 열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이런 감응을 국가폭력과 사회적 침묵의 맥락 안에서 바라보고 싶었어요. 어떤 죽음들은 이름조차 불리지 못하잖아요. 기록되지 않고, 상실로 인정되지 못하고, 그래서 제대로 애도되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데, 그 부재가 사실은 우리 안에 계속 남아 있는 거죠.
그래서 퍼포머의 몸이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대어 올 수 있는 몸’, 그리고 ‘빌려줄 수 있는 몸’이 되도록 했어요. 말하자면, 누군가의 상실, 누군가의 침묵이 그 몸 위에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인 거예요. 그 몸은 곡선이고, 지형이고, 또 리듬이죠. 마이크의 흔들림이나 장기의 곡률이 그 리듬을 만들어내고요.
결국 이 퍼포먼스는 단지 하나의 이야기나 동작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떻게 애도하고, 그 감정을 감각하고, 다시 살아낼 수 있는지를 함께 리허설하는 장소를 여는 거예요. 말하자면, 애도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서로의 몸에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그런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보려는 시도죠.
…
(카메라를 끄고, 장혜진 안무가의 ‘기대고 있다’ 텍스트 가이드를 마친 뒤 이어진 대화)
… 그리고 바로 이 ‘기댐(leaning)’이라는 동사가 흥미롭습니다. 여러 가지 차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주창조론에서 세계의 구조를 설명할 때 맨 아래에 세계거북이 있고, 그 위에 코끼리들이 있고 그 위에 세계가 놓여있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위에 올라 서있습니다. 반면 ‘기댐’이라는 것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짓는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몸과 세계의 경계 역시 흐트러뜨리는 것입니다. 만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기댐’이 흥미로운 것은, 이 관계성 안에서는 누군가가 다른 존재를 위한 디딤돌이 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댈 수 있는 누군가를 믿고 몸을 던지는 것과도 같아요. 바로 그 점이 ‘기댐’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것은 능동적인 행위이면서, 동시에 기대는 것을 받아주는 동작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두 가지의 활동이 함께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당신이 입술로부터 시작해서 혀, 목구멍, 눈으로 나아가는 ‘기댐’을 수행했던 것처럼, 모든 것은 서로에게 기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타자와 함께 있음(being with the other)’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겁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서로를 나누는(participate) 것, 이것이 저에게 있어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