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원포
남과 북을 이어 유라시아로 달려가는 꿈을 지니고 우리 포럼이 세워진 지도 만 6년이 지났습니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경상북도에서 남북경협포럼을 시작하여 유라시아의 꿈을 꾸면서 달려간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함께 품은 귀한 동역자들이 동참하였고, 그동안 많은 연구과제(포스코, 경상북도, 태재재단, 정림건축, 경북문화관광공사, 통일과나눔 등)를 수행하며 값진 열매들(보고서와 책자들)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원포의 가치를 공유하는 의미 있는 행사와 활동들(울독 세미나, 무제우편 통일편지 보내기, 울릉도·독도 평화마라톤 출정식과 한복 패션쇼, 이태원참사 및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 외국인 위로)도 꾸준히 이어 왔습니다.
그 기간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정치적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마침내 북한(조선)은 헌법까지 개정하여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천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통일 관련 모든 조형물을 철거하고 민족이라는 개념마저 배제하였으며, 심지어는 북한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동해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독(울릉도와 독도)을 지도에서 지워 버리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국경을 맞댄 이웃국가로 규정하며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사회는 미국 중심의 G1 벨트와 중국 중심의 G2 벨트를 사이에 두고 더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AI 기반 자율살상무기의 파괴력은 20세기 핵무기보다도 더 위험해지고 있고, 관세전쟁과 과학기술 전쟁에서도 큰 성과를 보지 못하자 G1의 지위를 지키려는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가지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부전선에서는 러-우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 이어 미/이-이란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도가니 속에서 분단의 역설처럼 대한민국과 북한은 방산 특수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전쟁은 전 세계의 에너지 물가와 환율을 뒤흔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요 산업들의 공급망 재편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자칫 동부전선인 한반도와 대만으로 옮겨붙지 않도록 우리는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AI가 사람을 추월하려 하는 시대, Physical AI로 작동되는 휴머노이드와 자동차와 드론, 스마트 팩토리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도시와 국가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으로 작동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AI를 인류가 어떻게 다루어 나가야 할 지에 대한 기술 표준이 필요합니다. 마주 달리는 두 개의 거대한 폭주 기관차를 멈춰 세우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그 중간 허브가 바로 한반도가 될 것입니다. 미중이 마주하는 곳, 냉전의 상징인 DMZ가 이제 국제 평화를 조율하는 AI-Hub로 새롭게 거듭날 것입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이 어지러운 국제관계의 변화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과 북한은 20세기 냉전의 산물인 휴전선을 마주하고 여전히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 비극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이 서로 적대적 관계를 버리고 평화적 우호관계로 전환되는 순간, 세계 역사를 뒤흔들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바늘구멍, 아니 관문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청포도 프로젝트입니다.
두 국가 관계를 천명한 북한을 향해 우리가 잘잘못이나 유불리를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해방 직후부터 두 국가주의를 견지하며 연합제(실질적으로 두 국가관계)를 주장해 왔기 때문에, 한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연방제 통일을 원하던 북한이 마침내 자신의 방안을 포기하고 우리의 주장과 방식을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냉정하게 두 국가 관계 속에서 국경을 마주하는 선린우호의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가면 됩니다. 동서독이 그랬듯이, 여전히 한 민족이라는 생각이나 장차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대 명제는 견지한 채, 당장의 대사관계는 못 이루더라도 그냥 서로의 국호를 불러주며 상주 무역대표부를 개설하고 필요한만큼의 우호협력관계를 만들어가면 됩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서로 체제를 인정하는 두 이웃국가가 된다면, 필요에 따라 (도움만 된다면 얼마든지) 상호 경제협력이나 무역을 못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지난 5월, 조선의 내 고향 축구팀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우승을 거둔 일이 그 한 예입니다. 이웃 국가인데 국제 경기에 상호 방문을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 같은 변화의 실상을 인지한 상태에서 우리가 꿈꾸는 청포도 프로젝트의 새로운 청사진을 짜야 할 것입니다. 청진과 포항을 쇳물로 이어 길을 내고자 하는 이 꿈의 프로젝트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동반 성장하며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놀라운 꿈을 꾸는 것입니다. 철강은 한 나라의 경제를 좌우지 하는 골간산업입니다. 전쟁 직후 북한이 강선제강을 일으키며 철강생산에서 앞서갔을 때에는 북한 경제가 우리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6월 9일은 철의 날입니다. 1973년 그날, 우리나라가 꿈꿀 수 없었던 일관제철소를 완성하여 제1고로에서 쇳물이 콸콸 쏟아졌던 날입니다. 박태준 회장의 우향우 정신으로 포항제철을 완성한 이후 우리는 엄청난 경제 발전을 경험했습니다.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포항에서 시작된 그 꿈의 기적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전국으로 펴져 나갔고, 조선, 기계, 자동차, 가전, 방산, 그리고 마침내 반도체까지 이르러 중동에서 전세계 수출로 이어지면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꿈을 상실한 민족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전 세계 청년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BTS와 한국의 음식, 문화를 경험하러 한국으로 몰려듭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꿈을 상실하고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청포도의 꿈은 미래세대에게 꿈을 주기 위해 시작한 것입니다.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민족을 위해 일하라’고 주문하셨던 박태준 회장님의 꿈, 북한에도 반드시 제철소를 세워서 민족이 함께 부흥하기를 소망했던 우리 선대들의 꿈이 청포도 프로젝트를 통해 계속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북한에 우리가 경험했던 1970~80년대의 건설 붐과 인프라 재건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기적의 시작이 될 것이요, 한반도에 새로운 경제성장 잠재력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를 통해 우리도 함께 그 물살을 타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꿈들이 펼쳐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우선 북한을 묶고 있는 유엔과 미국의 경제제재가 풀려야 합니다. 그래서 트럼프-김정은-시진핑의 회담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1953년 휴전협정시에 전쟁당사자이면서 조인식에 불참했던 것과 같은 역사의 과오를 데자뷔처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도 이 역사적 변화의 흐름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그 모진 겨울의 풍상이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7월(양력 8월)이 되면 우리가 그토록 그리던 청포 입은 손님이 흰 돛단배를 타고 찾아올 것입니다. 경북이 낳은 저항시인 이육사는 조국의 해방을 그렇게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에 찾아올 그 평화의 손님은 푸른 작업복을 입고 청진과 포항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 손님에게 우리도 시인의 마음처럼 은쟁반에 하얀 모시수건을 깔아두고 청포도를 대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