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했던 인터뷰의 기록을 다시 열어봤어. 내가 답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한 시간까지 적어 두었는데, 우리는 5월 16일 오후 4시 25분에 첫 마디를 주고받기 시작했더라. 아직 열리지 않은 전시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워. 특히나 내가 기획하지도 않은, 그러나 꽤 잘 알고 있는 사람의, 하지만 완결 지점이 아직 Flagged 되지 않은 , 어떤 전시를 상상하는 건 더 복잡하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너의 전시의 안내판같은 서문이 아니라 ..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부터-막이 내릴 때 까지 계속 이어지는 대화로 남겨지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매일-혹은 매주 업데이트 되는 흔적인거지. (오프닝 직후의 흥분을 담아도 좋고, 언젠가 종이에 인쇄가될 수도 있겠고! ) 마치 반복되는 이미지로부터 계속해서 거부당하다가, 한 순간에 빨려 들어가고, 또 다시 성큼 몸을 빼게 되듯이. 때로는 엄청나게 몰입해서 긴 글을 받고, 당혹스럽게도 짧은 단어의 답변을 보내고, 전혀 관련 없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가, 다시 너의 이미지로 돌아오고. 부딪히고-흩어지는 그 감각들 만큼 이 대화도 그런 리듬감을 가지면 어떨까 싶어.
그런 의미에서 너의 사진 이야기를 좀 하자면, 우선 재밌는 점은 너는 네가 찍힌-네가 찍은-네가 가진 이미지들을 몽창 모아서 마치 오픈 소스같은 공식을 만들었다는 거야. '공식에 활동할 수 있는 오픈소스'아니고, '오픈소스화 되는 공식' 아니고, 오픈 소스 같은 공식. 무엇을 대입해도 상관 없지만, 결국 저 깃털들의 세계에서 흩날리는. 너는 이걸 배기관이라고 말한 것 같아 . 그 배기관으로부터 분명 어떤 연기가 뭉게뭉게 나고 있는데, 빠져나오면 머지않아 그냥 대기의 일부가 되어 버리잖아.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미지들이 그 안에 들어 있을 때 눈을 들이대서 봐야 하는거지. 눈이 좀 맵고 혼란스럽겠지만!
그럼 네가 보내준 첫 번째 이미지를 들여다 보자. 발치에 놓인 커란 타월, 조금 더 작은 베개 위의 타월, 절반도 채 흐트러지지 않은 한 침대와, 시트가 거의 다 벗겨진 오른 편의 또 다른 침대. 체리색의 나무, 전원 풍경을 그린 그림, 광택이 있는 커텐, 그 밖으로 보이는 건물의 모양. 사진의 중앙에서-오른쪽으로, 다시 사진의 중앙에서, 왼쪽으로. 이 이미지가 읽히지 않고 감각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부디 흥미로운 시작이길 바라며, 영아가 (글. 방영아)
첫번째 편지 잘 받았어. 어제도 오늘도 이미지로 가득한 종이에 파묻혀 있다가 이제야 키보드를 잡고 앉았어. 이 대화의 미래에 대한 의견은 나도 동의해. 어쩌면 우리의 대화가 아주 오랜 기간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이미지가 변하다 못해 작은 먼지로 폭발하는 시간 속에서, 그것을 믿는 두 명의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 ‘어떠한’ 이미지도, ‘어떠해야 하는’ 이미지도 아닌, 그 영원함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수다는 돌아오지 않을 공을 던지는 것과 같아.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은 무수히 많은 공들이 하늘에 던져졌을 때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몰라. 적당히 맑은, 그런데 공이 던져진 하늘.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공. 그 정지된 순간을 담을 수 있는 몸짓에 대해 생각하기. 아름다움과 공과 그것의 경로 중 무엇도 정의할 수 없지만 우리는 세 개의 조건이 일치하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공식이야.
이 이미지는 나의 usb에 보관되어 있지만 내가 찍은 것이 아니야. 2003년경에 캐나다에 출장을 갔었던 아버지가 찍어둔 사진이고, 나는 이것을 2022년에 발견했어. 하지만 이 사진에서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어쩌면 앞선 문장들은 전부 픽션일지도 몰라. 껍데기 같은 글이 침대 시트와 커튼과 건물을 조금씩 변형시키지. 나는 이 이미지를 감각시키기 위해 분해할거야.
보는 몸짓은 다른 감각에 대한 연상작용으로 이뤄져 있어. 만약 대상이 음성으로 들릴 때, 그것은 순행하는 시간과 함께 과거로 사라지기 때문에, 소리라는 감각을 통해 읽혀. 그러나 ‘포착되어 보일 때’, 대상은 오롯이 읽히는 것에 실패해. 그것의 정지된 순간 사이를 현재의 시간이 가로지르기 때문이야. 언니는 이 사진에서 타월과 침대 시트, 나무와 그림, 커텐과 건물을 읽었어. 중앙에서 시작해 오른쪽과 왼쪽으로. 이미지를 읽기 전에 감각하는 것은 읽으려는 눈동자 앞에 작은 방해물을 세워두는 것과 같아. 방법은 자르고, 겹치고, 돌리고, 병치시키고, 반복하는 간단한 것들부터, 모든 픽셀을 은유시키거나 눈동자의 정의를 달리해보는 것 까지 다양해.
이미지의 내부는 명사형에 기반하지. 달리는 사람의 사진을 보아도 우리는 그것을 ‘달리는 사람’ 이라고 읽어. 하지만 그 사진의 표면에 ‘달리기’라는 동사를 끼워넣는다면, 가독성은 찰나의 시간차로 방해를 받게 되는 거야. 그렇다고 그 이미지가 영원히 읽히지 않는 것은 아니야. 감각한 뒤에 읽히는 것은 바로 읽히는 것과 다를 뿐이지. 우리는 이미지로부터 한 번 튕겨나왔다가,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될거야. 배기관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용기 있게 부릅떠 시큰함과 눈물을 머금은 상태의 시각을 장착하는거지.
픽션을 보태자면 아버지는 출장을 간 다음날 시차의 어지러움에서 겨우 기상해 샤워를 했어. 이 호텔은 1박만 예약되어 있는 상태였고, 다른 숙소로 옮기기 위해 준비를 마친 아버지는 문득 잠으로 가득했던 여행의 첫날을 기록하고 싶었지. 배터리가 반 정도 충전된 카메라를 켜고 적당한 앵글에서 사진을 찍어. 이 각도에서 한 번, 살짝 비뚤게 걸린 그림이 반듯해 보이도록 두발짝 물러난 각도에서 또 한번. 두번재 사진을 찍는 순간 조식을 놓쳐 허기진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 아버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케이스에 넣고, 회의를 위해 차려입은 옷의 매무새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마지막으로 카펫의 먼지향을 한 번 들이킨 뒤 문을 나서.
순간을 포착했을 때 아버지가 감각한 것은 시차 때문에 뻑뻑해진 눈과 단잠의 개운함, 허기진 배와 오전 10시경의 빛,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과 침대시트의 부드러운 촉감, 그리고 장기간 비행으로 인한 부은 다리정도였을 거야. 아버지는_ 혹은 우리는_ 이미지 속 타월, 침대 시트, 그림, 커텐을 보면서 그 감각들을 연상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것들은: 샤워를 마친 뒤 아무렇게나 던져진 타월, 일어나 앉은 채로 다리를 뺀 침대 시트, 자신보다 이 곳에 더 익숙해 보이는 그림, 건물 사이로 내리는 강하고 어색한 빛을 가리는 커튼, 그리고 커튼 뒤의 어색한 건물들이야.
나는 이 이미지에서 위와 같은 감각을 상상하고 추출해. 그리고 그것들을 가장 적절하게 재감각시키기 위해 이미지의 나머지 부분을 삭제해 나가는 거야. 물론 ‘적절한 결과값’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아. 아까 전 내가 이 대화는 돌아오지 않을 공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지. 이것도 마찬가지야.
아버지는 어색한 장소의 피로함과 익숙한 허기를 감각했어. 어색한 장소의 피로함과 익숙한 허기는 어딘가에 있었을 익숙한 자신과 어색한 배부름을 상기시켜.
이 사진을 분해시킨 나의 동사를 발견했니?
무수한 이미지들의 모서리를 가위질한 날의 저녁, 영진.(글. 추영진)
그곳에-존재-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