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자키 린의 집안은 도쿄부 토요타마군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복했다. 그렇기에 린이 오만하고 콧대 높은 아이로 자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활을 다뤘다.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양궁을 가르쳤고, 그중에서도 가장 재능 있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꼈다. 린에게는 언니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에게 있어 언니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내내 언니의 그림자를 밟으며 ‘언니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린의 언니, 칸자키 우미는 늘 다정하고 사랑이 넘쳤다. 두 사람은 외모부터 성정까지 닮은 부분이 많았다. 의외로 잔걱정이 많은 사소한 부분까지였다. 언니를 쫓기 위해 부러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하던 린이었지만, 우미의 뒤를 쫓아다닐 때만은 제 나잇대의 아이처럼 보였다. 린에게 가장 처음 활을 쥐여준 것도, 화살을 쏘는 법을 알려준 것도 모두 언니가 처음이었다.
달라진 것은 린의 재능이 개화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과녁의 중앙에 화살이 꽂히는 횟수가 차츰 우미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가문의 사랑 또한 우미가 아닌 린에게 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축젯날 언니의 소맷자락을 붙잡던 린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날의 우미는 꼭, 다른 사람처럼 보일 만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대로 린의 손을 내팽개친 우미는 그대로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계절이 몇 번이고 뒤바뀌고, 해와 달이 몇 번이고 뒤섞였다. 그러나 린은 그날 보았던 언니의 표정을 잊지 못한 채였다. 린은 자신의 사랑이 유한함을 알았다. 실적을 내지 않는다면 자신 또한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언니처럼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녀는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양궁 연습에 매진했다. 더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혈귀가 집에 들이닥쳤다. 그녀는 바로 양궁을 들었지만, 과녁을 쏘는 것만 배웠기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린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그런 린을 귀퉁이의 작은 방에 밀어 넣고 온몸으로 문을 막았다. 종잇장 너머에서 피가 넘실댔다. 비명이 천둥처럼 크게 울렸으며,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사람 형체의 혈귀가 린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물처럼 유려한 칼날과 함께, 그것은 쓰러졌다. 구름이 걷힌 후 드러난 것은 달빛에 비친 소년이었다. 앳되어 보이는 소년은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한 린은 얼마간 바라보다 안아주었다. 린은 소년을 따라나서기로 했다. 절멸당한 집에 혼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 멀리 언덕에 서서 집을 바라보던 린은 그제야 자신이 받았던 사랑이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소년의 이름은 토미오카 기유였다. 기유는 린의 스승이자 가족이 되어주었다. 칼을 잡는 방법부터 혈귀를 없애는 방법까지 모두 가르쳐주었다. 두 사람은 잠시 떨어져 지낼 때도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린은 점차 그에게 의지하고 의지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릴 때와는 달리, 상냥하고 때로는 덜렁거리는 제 또래의 아이처럼 자랐다. 그렇지만 린은 가끔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두 사람의 감정은 차츰 연모로 변해갔다. 혈귀를 없애겠다는 굳은 의지가 흐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향한 감정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함께 있는게 당연해지고, 일상이 되어갈때쯤 둘의 방향이 달라졌다. 기유는 자신이 이미 린과 교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린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직 수줍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착각했다.
린도 린 나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아직 외사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언젠가 기유에게 고백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는 방향이 조금 달랐을지언정, 품고 있는 감정만은 같았다. 그렇기에 칸자키 린은 오늘도 그를 따라나선다. 언젠가, 모든 일이 끝나고 난 이후. 그를 향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게 되는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