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미터를 달린 트럭

독일 헤센주 에더뮌데에는 '랑에 하이데타일레(Lange Heidetheile)'라는 평범한 도로가 있습니다. 1번지에는 대형 유통체인 리들(Lidl)의 중앙 물류센터가, 11번지에는 리들 매장이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지난 9월 15일부터 이 두 건물을 잇는 아스팔트 위를 트럭 한 대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석이 없습니다. 핸들도 페달도 없으며, 운전자는커녕 비상시 차량을 제어할 안전요원조차 탑승하지 않습니다. 스웨덴의 화물 모빌리티 기업 **아인라이드(Einride)**가 개발한 완전 무인 자율주행 전기 트럭입니다. 두 회사는 독일 연방자동차청(KBA)으로부터 운전석 없는 레벨 4 자율주행 트럭의 공도 운행 허가를 사상 최초로 획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도로 안전 규제가 가장 까다롭기로 손꼽히는 독일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도자료 이면에는 묘하게 가려진 숫자가 있습니다. 현지 보도를 보면 이 트럭이 달리는 총 주행 거리는 약 400미터에 불과합니다. 성인 걸음으로 5분이면 닿는 거리입니다. KBA가 승인한 최고 속도는 자전거 속도인 시속 25킬로미터입니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규제 당국이 트럭 바로 뒤에 사람이 모는 안전 추적 차량을 바짝 붙여 달리도록 명령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이 무인 트럭은 한 번에 팔레트 15개를 싣고, 하루 최대 세 번 조심스럽게 왕복합니다.

한 대의 트럭을 두고 '독일 최초의 무인 공도(公道) 주행'이라는 찬사와 '400미터'라는 초라한 실적에 관한 기사가 함께 오르내립니다. 아인라이드는 지난 10년 동안 바로 이 두 숫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낙차를 줄타기해 온 기업입니다.

'홀로 달리는 자'

아인라이드(Einride)라는 사명은 고대 노르드어 '에인리디(Einriði)'에서 따왔습니다. 북유럽 신화에서 천둥의 신 토르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홀로 달리는 자'**를 뜻합니다. 독일어 수사 '아인(ein)'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일반의 짐작과 달리, 회사는 공식 채널을 통해 이 이름의 유래를 직접 바로잡은 적이 있습니다. 토르가 망치를 휘둘러 거인들과 맞섰듯, 자신들은 화석연료 의존과 비효율로 점철된 거대한 운송 시스템이라는 '거인'과 싸우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2016년 스톡홀름에서 출발한 이 회사의 설립자는 로베르트 팔크(Robert Falck)입니다. 볼보에서 디젤 트럭 파워트레인 제조를 진두지휘하던 정통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디젤 트럭의 심장을 만들던 엔지니어가 디젤 엔진은 물론 운전석 자체를 없애버리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듬해 7월, 고틀란드섬의 정치 축제인 알메달렌 주간에 아인라이드는 첫 시제품 'T팟(T-pod)'을 공개했습니다. 앞유리도, 문도, 좌석도 없이 새하얀 직육면체 상자에 바퀴만 달린 파격적인 외형이었습니다. 기존 완성차에 센서와 컴퓨터를 덧붙여 자율주행을 시도하던 경쟁자들과 달리, 아인라이드는 설계도면에서 인간이 탑승할 공간 자체를 없앴습니다.

'홀로 달리는 자'라는 신화적 이름을 물성으로 구현해 낸 셈입니다.

https://youtu.be/WwE9anGd1g8?si=jle85OrmKdoWLOPj

이름과 제품, 사명이 이토록 맞아떨어지는 기업은 드뭅니다. 캡(운전석)을 제거하는 순간, 트럭은 '인간이 조종하는 기계'에서 '화물만을 실어 나르는 순수한 이동 모듈'로 재정의됩니다. 당시 사진 한 장만으로도 미래 물류의 패러다임 전환을 직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시장과 자본은 열광했습니다. EQT벤처스와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Maersk)가 기꺼이 자금을 댔고, 2022년에는 지분 투자와 부채 조달을 묶어 5억 달러의 거금을 쓸어 담았습니다. 2019년 스웨덴 본국을 시작으로 2022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그리고 이번 독일 KBA에 이르기까지 '운전석 없는 트럭의 공도 주행 최초 허가'라는 타이틀을 연달아 세 번이나 거머쥐었습니다.

images.jpeg

7년 동안 전진한 거리는 100미터

하지만 2019년의 첫 번째 '최초' 기록을 다시 복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9년 5월, 스웨덴 옌셰핑의 DB쉥커 물류 단지에서 T팟이 터미널과 창고 사이를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스웨덴 국책연구기관 RISE의 보고서에 명시된 운행 구간은 약 300미터였고, 그중 실제 공도는 3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스웨덴 교통청이 허가한 주행 속도는 시속 5킬로미터였으며, 언제든 차량을 세울 수 있는 안전요원이 차량 바로 곁에 보행 상태로 붙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2019년 스웨덴의 300미터 테스트 구간, 시속 5킬로미터, 곁에 따라붙는 사람 1명. 2026년 독일의 400미터 단거리 구간, 시속 25킬로미터, 뒤따르며 감시하는 안전 차량 1대. 아인라이드의 무인 트럭이 규제의 장벽을 뚫고 실증 테스트베드를 확장하는 데 걸린 시간은 7년, 그동안 실제로 넓힌 운행 거리는 고작 100미터 남짓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