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다, 비(非)주류? No, 'Be 주류' <비주류 선언>

🈚 어디를 가나 주류와 비주류가 나뉜다. 나는 비주류 중 비주류였다. 항상 마이너의 길을 걸어왔다. 어찌보면 지금도 마이너의 길을 걸으며 비주류가 세상을 전복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은 말 그대로 꿈이다. 주류에 밀린 비주류는 세상에서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처럼.

🈲 비주류로 살아간다를 다른 말로 하면 그냥 개고생한다는 것.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20대 초반부터 개고생을 사서 했다. 안 되는 것을 알면서 이겨보려고 애썼다. 대학교 4학년, 대학원 준비를 하며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았다. 바로 '난독증', 글을 읽는 거 자체가 어려운 상태라는 것. 온갖 수단을 다 써봤고, 안간힘을 써봤다. 결국 치료는 불가능했다.

✴ 그래도 한 번 세운 목표를 쉽게 꺾기 어려웠다. 힘들어도 꾹 참고, 대학원 진학에 힘 썼다. 하늘이 도왔는지 좋은 선생님과 좋은 동료들을 만나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공부하며 가장 곤욕이었던 부분은 일주일에 천 단위 페이지를 읽어내야 하는데 쉽사리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을 볼 때, 글자는 내 눈과 멀어지고 싶어했다. 내 시야를 벗어나고자 했고, 내 시야로부터 소극적이길 원했다. 대신, 책 위 검은색 아지랑이는 나와 춤이나 추며 놀자고 속삭였다.

☄ 아지랑이가 보일 때마다 마음을 다 잡았다. 글을 한 번 가렸다가 다시 보기도 했다. 안 되면 한 문장씩 읽으려고 페이지 전체를 손으로 덮었다. 꼭 어린 아이에게 엄마가 글자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주는 것처럼 한 손은 문장을 가리키고, 한 손은 나머지를 덮었다. 그렇게 하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조금씩은 읽을 수 있었다. 매주 그렇게 허상처럼 보이는 아지랑이와 씨름을 했다.

🚀 검은색 아지랑이와 씨름을 하면서도 '긍정'이란 단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꿈'이란 허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걸 반영하듯 내 소개는 "책을 읽기 싫어하는 국문과 대학원생"이었다. '싫어한다'에는 단순히 싫다는 의미보다 '애증'을 담고 있다.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한다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사랑한다는 것을.

🎫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읽던 책들이 있다. 교과서도 아니고, 누군가 정해준 규칙도 아닌, '장르문학'이다. 무협이든 판타지든, 내 인생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장르문학은 내게 아지랑이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 쉬운 문장과 빠른 호흡으로 의식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 또한, 장르문학은 내게 선물이었다. 유년시절에도 많은 책이 있었지만 읽지 않았던 나를, '책'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줄곧 읽어가는 그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도 했다. 남들은 생각할 수 없는 생각도 했다. 대학교 1학년, 과학 수업에서 '우리는 외계인이 조종하는 게임 속 캐릭터'이다라고 썼다. 과학 수업이어서 그런지, 그 레포트는 B를 받았다. 하지만 전체 수업은 A를 받으며 그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다.

🏫 초등학교 시절부터 용돈이 없음에도 방과 후 꼭 들렀던 곳이 '책방'이다. 아, '만화책방'이다. 만화와 소설로 가득찬 그곳을 꼭 들렀다. 아직도 기억나는 회원번호는 486번. 형이 물려준 회원번호이긴 한데, 10만명의 회원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나는 이 번호로 단골임을 입증했다. 책방 주인분도 바뀌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주셨다. 그리곤 나를 단골 취급해줬다. 내가 책 읽는 것이 느리다고 말하니, 연체가 아닌 연장을 자주 해주셨고, 방학일 경우 한 달 동안 '시리즈'를 다 빌려주셨다. 그 책방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글과 거리가 '더욱' 멀어졌을 것이다.

🚩 그렇게 쌓아놓은 친근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사용하는 웹툰/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 작품 목록에 490개의 작품이 담겨 있다. 그 작품들은 매일마다 나에게 읽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알림을 통해. 그 알림은 사실 내게 곤욕이다. 하루에 2~3시간을 할애해야만 다 볼 수 있기 때문. 그럼에도 놓치기 싫다. 그 재미를, 그 흥미를, 그 흡입력을 그리고 그들의 성장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