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대표하는 테크 기업 화웨이는 미국의 수출 규제를 버티며 오히려 더 강해졌고, 그 존재감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두들겨 맞아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바탕에는 창업기부터 이어져 온 **‘변신력(変身力)’**이 있다.
화웨이는 1987년, 사설 교환기(PBX) 위탁 제조·판매를 전개하는 민간 기업으로, 인민해방군 출신의 런정페이(任正非) 등을 중심으로 중국 선전(深圳) 에서 창업했다. 런정페이는 군 경력이 있으나 기지 건설 등 담당이었고, 이후 중국 정부와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비교적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군대식 격언을 앞세워 회사를 이끌면서 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독자적인 통신 장비를 갖지 못한 국가는, 군대를 갖지 못한 국가와 같다.” 런정페이의 이 유명한 발언은 1994년,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던 장쩌민(江沢民) 과의 면담 자리에서 나왔다. 당시 중국의 도시 통신 시장은 구미(서구) 외자계 대기업의 전화 교환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새로운 디지털 교환기를 개발한 화웨이는 ‘외국 의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정부의 후원 등을 업고 중국 시장에서 급성장했다. 강한 자립·내재화(自前主義) 와 중국 시장을 발판으로 한 성장은 이후 화웨이의 행보에서도 반복된다.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 것은 1997년 무렵이다. 먼저 통신 인프라가 미정비된 러시아·아프리카 등 신흥국에서 시장을 개척했다. 2004년 네덜란드 통신사와의 계약을 계기로 유럽 등 선진국 시장으로도 활로를 넓혔다.
2010년 전후 3G에서 4G로의 전환점에서는 매년 매출의 10%를 넘는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사람·물자·자금(ヒト・モノ・カネ)을 제품 개발에 집중 투하했다. 4G 전환으로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는 타이밍에 맞춰 유럽·아프리카 등 전 세계 통신 인프라 시장에서 계약을 잇달아 따내며, 통신 기지국 시장에서 정상으로 뛰어올랐다.
2010년대에 들어 화웨이는 ‘통신 인프라 설비 제조사’라는 포지션을 넘어 스마트폰 등 단말 사업에도 진입했다. 높은 기술력과 비용 경쟁력을 무기로 애플과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상위 스마트폰 제조사가 됐다.

그러나 2019년 이후 미·중 마찰이 격화되면서 강화된 미국의 수출 규제(엔티티 리스트 지정)는 화웨이의 질주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첨단 반도체 조달과 구글의 스마트폰용 기본 운영체제(OS) 이용이 제한되면서, 주력인 스마트폰 사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악의적인 공격자로부터 시민을 지킨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는 화웨이의 통신 장비가 안보상 위험하다고 주장하며 서방 국가들에도 ‘화웨이 배제’를 촉구했다.
존속 위기에 직면한 시기, 평소 드물게 미디어에 모습을 비친 런정페이는 “우리는 수도꼭지와 파이프를 파는 회사다”라고 말했다. 통신사업자 등 고객을 ‘조력자(黒子)’로서 지원해 온 자사의 스탠스를 다시 강조한 것이다.

(사진=AFP/아프로)
미국 제재에 직면한 화웨이는 자사 OS와 독자 반도체 개발, 사업 영역 확장으로 움직였다. 자율주행 기술과 전기차(EV)용 시스템을 제공하는 스마트카(Smart Car) 사업(자동차 부품 공급자 사업)에 본격 진입했고,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 화웨이 클라우드(Huawei Cloud) 와 에너지 사업 등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사업을 잇달아 출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