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웨이가 AI 인프라의 중핵인 반도체 패권을 노린다. 설계를 넘어 제조에 진입해 TSMC에 필적할 기술 확보를 목표로 한다. 독자적인 반도체 진화론 ‘타우(τ) 스케일링의 법칙(タウスケーリングの法則, 타우의 법칙)’ 을 내걸고 TSMC를 추격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광둥성 선전 중심가에서 차로 북쪽으로 약 45분. 하이테크 산업 유치를 추진하는 개발 구역 한켠에 거대한 검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입구에는 사명이 걸려 있지 않고 감시 카메라가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는 등 엄중한 보안 조치가 적용돼 있다.
이곳은 화웨이가 2022년부터 건설해 온 새로운 거점이다. 부지 면적은 51만5000㎡, 연면적은 76만㎡를 넘는다고 한다. 주변 버스 정류장이나 지도 앱에는 ‘화웨이’로 표시돼 있고, 이미 다수의 직원이 근무 중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화웨이는 이 신거점의 상세를 밝히지 않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첨단 반도체 제조 거점으로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계 반도체 관계자도 “화웨이는 반도체를 자체(自前)로 하려 한다”고 말한다.
화웨이는 선전 내에서 반도체 제조 네트워크 구축도 서두르고 있다. 신거점 근처에는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 시캐리어(SiCarrier, 新凱来技術) 와 중국 메모리 업체 스웨이슈어(SwaySure, 昇維旭技術) 거점이 들어섰다. 두 회사는 선전시가 출자한 기업이지만, 시캐리어의 전신은 화웨이가 2012년에 설립한 연구 부문으로 알려져 있다.
화웨이의 최대 병목 중 하나는 반도체 ‘제조 기술’이다. 미국의 최첨단 제조 장비 수출 규제로 미세화 경쟁에서 뒤처져 왔다. 그동안 자회사 하이실리콘(海思半導体)이 담당해 온 ‘설계’에 축을 뒀지만, 마침내 ‘제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웨이의 설계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오므디아(Omdia) 컨설팅 디렉터 스즈키 토시야(鈴木寿哉) 는 “감시카메라용 이미지 처리 칩 등 설계력은 탁월했고 한때는 시장을 과점했다. 미·중 대립이 없었다면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용 ‘기린(Kirin/麒麟)’, AI 서버용 ‘어센드(Ascend/昇騰)’ 등 첨단 반도체를 개발해 자사 제품에 탑재해 왔다.
2019년 이전에는 TSMC에 제조를 위탁해 당시 최첨단인 5nm 수준 반도체도 개발할 수 있었다. 전환점은 2020년 이후다. 미·중 대립을 배경으로 미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최첨단 반도체를 입수할 수 없게 됐다. 엔비디아 GPU 조달이 막히고, 기린·어센드 등 자사 반도체의 TSMC 위탁 생산도 중단을 강요받았다.

(사진=좌상: VCG via 로이터, 우상: 로이터, 하: CFOTO/Sipa USA via 로이터)
특히 5nm 이후 제조에 필수인 EUV(극단 자외선) 노광 장비를 입수하지 못한 것이 치명타다. 전 세계에서 네덜란드 ASML 이 유일하게 제조·판매하는 장비로, 미국은 중국으로의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화웨이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 로 위탁 생산처를 전환했다. 노광 공정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7nm까지는 미세화를 진행했지만 EUV 부재로 ‘5nm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는 2025년 6월 화웨이 노트북 신제품 탑재 칩이 기존과 같은 7nm 세대였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2023년부터 스마트폰에 탑재해 온 칩과 동일 세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