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제재를 극복한 화웨이지만, 이를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CEO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종업원 지분 보유(従業員持ち株)’ ‘순환 회장(輪番会長)’ 등 독자적 거버넌스(governance)는 ‘CEO가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해 온 제도다. 미·중 대립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후계 지명(後継指名) 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2026년 5월 8일 중국 CCTV 대표 뉴스 프로그램 ‘신문연보(新聞聯播)’에 런정페이가 등장하자 중국 테크 업계는 들끓었다. 공산당 서열 6위인 딩쉐샹(丁薛祥) 부총리가 화웨이 연구개발 거점을 시찰했고, 런정페이가 안내역을 맡았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이나 신제품 발표 같은 화려한 연출은 없었고, 노출도 10초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주목을 받은 것은 런정페이가 미디어 전면에 나서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2019년 미국 수출 규제가 거론되던 시기 등, 런정페이가 공개석상에 나서는 순간은 대체로 중국 테크 업계의 전환점과 겹쳐 왔다. 이번도 의도가 있는 행동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의도는 방영 시기와 내용에서 드러난다. 5월 8일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13~15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게다가 소개된 화웨이 거점은 상하이 칭푸구의 롄추후(練秋湖) 캠퍼스 내 ‘반도체(칩) 기초기술 연구 실험실(芯片基礎技術研究実験室)’이었다. 정상회담 직전에 미국이 제재하는 반도체 R&D 거점을 굳이 보여 준 셈이다.
트럼프 방중 기간 14일 밤 만찬에는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 주요 테크 기업 수장들이 참석했지만 런정페이의 모습은 없었다. 1주 전 미디어 등장을 택한 것은 “미국 제재에 앞으로도 맞서며 스스로 미래를 열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미국 정부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화웨이를 금수 대상 리스트에 추가하고 본격 수출 규제를 시작한 것은 2019년 5월이다. 약 7년이 지난 지금, 제재를 넘어 부활을 이뤄낸 배경에는 런정페이의 리더십이 있다.
다만 미국 제재 이후 화웨이가 자사 OS·반도체 개발, 자동차 부품·클라우드 등 신사업(플랜B)을 잇달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런정페이 혼자만의 힘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런정페이는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다”라고 말해 온 인물이다. ‘카리스마 경영자’로 불리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엔비디아의 젠슨 황처럼 전면에 서서 톱다운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과는 다르다. 런정페이는 전면에 거의 나서지 않고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런정페이는 자신을 경영과 인사에 특화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규정한다. 실제로 2019년 8월(제재 직후) “화웨이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의 순간”이라고 사내 문서에 올려 종업원을 고무했다고 전해진다.
그 진수는 현장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거버넌스(기업지배) 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다. 런정페이 자신이 “화웨이의 성공은 인재 관리의 성공”이라고 말할 정도다.
런정페이가 구축한 거버넌스의 핵심 중 하나가 ‘종업원 지분 보유 제도’다. 화웨이는 창업 이래 비상장을 고수해 왔다. 단기적 사고에 빠지기 쉬운 외부 주주의 목소리를 배제함으로써 장기 관점의 플랜B를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또한 화웨이는 창업자 런정페이와 종업원이 주식을 보유하는 구조를 도입했다. 중국 기업은 주주 수에 제한이 있어, 종업원 지분은 ‘화웨이 인베스트먼트 앤 홀딩(Huawei Investment & Holding)’에 가상 출자하는 형태를 취한다. 2025년 말 기준 런정페이 지분은 약 0.59%에 그치고, 나머지는 16만9054명의 종업원이 보유한다. 지분 보유 종업원은 실적에 따라 배당을 받으며, 신사업 성과가 보상으로 이어지는 인센티브 구조다.
지분 보유 종업원 다수는 ‘대표위원회(代表委員会)’를 선출할 때 투표권을 가진다. 대표위원회는 17명의 이사회와 15명의 감사위원회 멤버를 각각 선출한다. 종업원은 간접적이지만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
미국 제재 이후의 플랜B 실행은 리스크가 크다.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의사결정을 기동적으로 수정할 장치가 필요하며, 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화웨이 특유의 ‘순환 회장(輪番会長) 제도’ 다.
이는 3명의 부회장이 반년(6개월)마다 교대해 일상 경영 지휘를 맡는 방식이다. 집행 톱을 고정하지 않음으로써 급격한 확장에는 브레이크를, 지나치게 보수적 의사결정에는 궤도수정을 걸 수 있다. 조직이 관성에 빠지거나 경직되는 것을 피하는 장점도 있고, 차세대 리더 육성 기능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