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리에 (Lyeh) / 수정의 교회(수질 관리국) 최고 책임자 수신: 각 도시 생태 연구원 및 삼림 경비대 주제: 미분류 식물 파생 지성체, 통칭 '요정'의 생태학적 진실과 인지 오류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리에입니다. 최근 들어 제 이름으로 발송되는 공문서가 유독 많은 것 같지만… 네, 그냥 기분 탓이려니 하고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화책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요정(Sprite)'이라고 하면 등에 반짝이는 날개가 달리고 숲속을 날아다니는 작은 인간형 생물을 떠올리시겠죠. 하지만 마도생물학에서 정의하는 요정은 그런 귀여운 독립 개체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특정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한 식물 군락이 피워낸, 단 하나의 생물학적 아바타(단말기)'**입니다.
요정은 일반적인 생물처럼 교미를 통해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식물종이 천적이 없는 완벽한 환경에서 극한의 번성을 누리게 되면, 생존과 번식에 쓰고도 남는 막대한 **'잉여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식물 군락은 이 남는 에너지와 유전적 정수를 한곳으로 초압축하여 고차원적인 지성체를 피워내는데, 이것이 바로 요정입니다.
식물은 시각 기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대기의 습도, 토양의 산성도, 그리고 주변을 지나가는 고등 생물의 **'뇌파(전기신호)'**를 통해 세상을 인식합니다.
요정이 지성체의 껍데기를 빚어낼 때, 그들은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나 윤리관은 물론, 외형적 특징을 포함한 '성별'이라는 1차원적인 생물학적 개념조차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한 그들이 반드시 '인간 여성'의 형태만을 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들의 군락을 가장 자주 찾아오고, 가장 강한 생태적·정서적 영향을 준 개체"**의 유전적 실루엣과 파동을 완벽한 생존의 이정표로 삼아 맹목적으로 모방할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요정은 자신에게 생명수를 준 은인의 모습(외형적 특징까지 완벽하게)을 도화지처럼 그대로 뒤집어쓰고 태어나, 그 원본을 향해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애정(굴광성)을 쏟아붓게 됩니다. 인간 사회의 잣대로 보자면, 이러한 행동 양식은 종종 **'자신의 원본(동성)을 향한 특정한 성적 지향이나 집착'**으로 오해받거나 해석되곤 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는 번식이나 사회적 교감이 아니라, 그저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는 식물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사적인 주석: 사실 요정이라는 개체 자체가 워낙 희소하여, 객관적인 관측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고백하건대, 이 분석의 상당 부분은 논리적 추론에 더해… 제가 관리하는 빨 강(Red River)의 '키리 씨'를 관찰하며 얻은 저의 아주 사적인 경험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저와 외형적 특징마저 소름 돋게 똑같이 닮은 식물이, 윤리적 거리낌이나 성별에 대한 일말의 인지조차 없이 제게 절대적인 애정을 쏟아낼 때의 그 묘한 당혹감과 신비로움이란… 네, 겪어보지 않으면 서술하기 힘든 감정이지요.)
식물은 도망칠 수 없기에, 재난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이 극도로 발달해 있습니다. 요정들 역시 수 킬로미터 밖의 기압 변화, 미세한 지진파, 수질의 변화를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읽어냅니다. 만약 요정이 갑자기 불안해하며 시들해진다면, 당장 재난 대피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요정은 결국 그 생태계가 얼마나 풍요롭고 안전한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지표'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걷지도, 생존을 투쟁하지도 못합니다. 그저 환경이 허락하는 한 피어있다가, 환경이 버리면 말라 떨어지는 순진한 거울입니다. 숲이나 강에서 이들을 마주친다면, 꺾으려 하지 말고 그저 맑은 물과 햇빛을 비춰주시길 바랍니다.